2010년 8월 10일 화요일

푸른 눈의 제주 해녀 섬 기행 - 샘터

푸른 눈의 제주 해녀 섬 기행

http://blog.naver.com/bogilnara/140110744002


폭풍주의보가 내렸다. 항해를 기다리던 배들은 모두 방파제 안으로 몸을 숨겼다. 여름 장마철 제주 섬은 자주 바닷길이 끊긴다. 제주뿐이랴. 광폭한 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섬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폭우가 쏟아지고 돌풍이 불고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바람이 자고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언뜻 햇빛이 비춘다. 하지만 어떤 배도 감히 닻을 올리지 못한다. 어느 순간 다시 바람이 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날 바닷길의 주인은 여객선의 선주도, 선장도 아니다. 저 강한 바람만이 이 바다 뱃길의 전능한 지배자다. 해안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바닷길을 통제하는 듯이 보여도 그들에게는 길을 열고 닫을 어떠한 권한도 없다. 실상 그들은 바람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바람의 지배체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자들만이 바다에서의 생존을 보장받는다. 바람의 독재는 언제쯤이나 끝나게 될 것인가.

쉐린 히바드(Sherrin Hibbard), 그녀도 저 폭풍이 어서 잠들기를 기다린다. 머잖아 그녀는 제주 섬 200km를 헤엄처서 일주할 예정이다. 쉐린은 제주대 부속 중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근무 중이지만 그보다는 푸른 눈의 해녀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2009년) 제주 한림의 한수풀 해녀학교를 졸업 한 뒤 해녀가 됐다. 4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열리던 해녀학교 시절, 모두가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딸 때 그녀는 첫 주 수업부터 쓰레기를 건져왔다. 처음에는 다들 비웃는 눈치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주에도 그녀는 쓰레기를 건저 왔고 여전히 사람들은 웃기만 했다. 하지만 넷째 주에도 그녀가 쓰레기를 건저오자 동료들이 이유를 물어보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올해 4월, 해녀 물질 대회에 참가한 쉐린은 60명중 60등을 했다. 꼴지를 한 것은 역시나 그녀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대신 바다 쓰레기를 주워 나왔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쉐린의 바다와의 인연은 운명적이었다. 호주에서 태어난 쉐린은 시드니항 오페라하우스 부근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놀이터 삼았다. 페리를 타고 가다가도 풍덩 뛰어내려 헤엄을 치기 일쑤였다. 11살 때 그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그래서 15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17살이 되자 집을 나와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일하며 자기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모험과 여행가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선택을 아버지는 못마땅해 하셨지만 어머니는 등을 떠밀어주셨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많은 직업을 전전하던 쉐린은 호주로 돌아가 12년 동안 어부생활을 했다. 그녀가 탄 배는 고등어와 상어, 대하, 가리비 등을 잡았다. 한 번 출어하면 보통 3~4개월 동안 대양을 떠다니며 어로를 해야 하는 원양어선. 여자 몸으로 그 험한 바다에서 생활하려니 "성깔이 있어야 했다." 처음 배를 탈 때 여자 선원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그녀는 처음 7년 동안은 어부 일과 요리사를 겸했다. 그 후 그녀는 "성깔 있게" 일한 덕분에 남자선원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갑판원, 항해사를 거처 선장으로까지 승진했다. 나중에는 여자 선원들로만 구성된 어선의 선장이 되어 대양을 누비기도 했다. 어부생활을 그만 둔 뒤에는 배 만드는 목수가 되었고 35살 나이에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해양고고학을 전공했으며 제주에서는 해녀가 되었으니 그녀는 바다와 인연을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

쉐린은 원어민 교사로 먼저 와 있던 대학친구의 권유를 받고 한국으로 건너 왔다. 운 좋게도 제주도에서 교사 자리를 얻었다. 1년 예정으로 왔지만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한 쉐린은 벌써 6년째 제주에 살고 있다. 그녀는 중문 해녀의 집에서 처음 해녀들을 만나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해녀가 되고 싶어 태국까지 가서 프리다이빙(무호흡잠수)을 배워왔고 해녀학교를 다닌 뒤 해녀의 꿈을 이루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제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물질을 하며 사는 것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제주처럼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도 사람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어째서 바다를 함부로 대할까. 쓰레기를 버리고 어류를 남획할까. 왜 경관을 파괴하는 고층건물을 짓는 걸까. 그녀는 환경오염과 개발로 망가져 가는 제주를 보는 것이 안타깝다. 그녀가 제주 바다를 헤엄처서 일주할 결심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제주사람들의 환경의식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2010년 7월 31일, 제주 삼양 해수욕장을 출발해 20여 일 동안 200km의 험난한 물길을 헤엄쳐 갈 것이다. 프로젝트. 그녀의 뜻에 동감한 미국인 영어 교사 스티브 오버 하우저가 카약을 타고 가며 그녀를 보호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뜻에 공감하고 그녀를 응원해 준다면 그녀는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환경운동사에 작지만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게 될 것이다.

글: 강제윤(시인)

<샘터 2010년 8월호 >

댓글 없음:

댓글 쓰기